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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및 역극

해볼까요.

디미트리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 한두 마디 하고 마는 사람. 누군가에겐 단 한 마디, 또 누군가에겐 주제에 따라 한 두 마디, 또 다른 누군가에겐 매번 한 마디씩. 심리적인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말수는 그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현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는 두 가지의 관계만 있다던가. 정말 좋거나, 정말 나쁘다거나. 디미트리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과 자신은 분명 정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어땠는가? 좋다고 하긴 빈말로도 못 할 정도였고, 나쁘다 하기엔 멀쩡히 대화하고 있었다. 단지 건조할 뿐이었지. 결국 디미트리는 조엘 라디에르를 '적당히 괜찮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 뭐, 과거에는 있었겠지. 지금은 굳이 떠올릴 가치도 없는 일들이지만."

 

"... 정말 떠올릴 가치도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작은 행동도 결과를 내기 마련이니까. 아주 조금 움직이는 행동도 '움직였다'라는 것에 의미가 있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숨을 쉬고 있다'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네가 '떠올릴 가치도 없는 일들'이라 칭한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말 가치도 없을까? 그런 생각에 네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 와중 네 표정이 보였다. 무언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후회가 차고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표정을 읽는 것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해왔지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저, 평소와 같은 덤덤한 눈으로 널 바라보았다. 

 

 

"가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찌 되었던... 그 과거 탓에 지금의 라디에르 씨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것들을 떠올리면서 미래를 그리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둘 것이다. 더 말을 끌어봤자 자신과 네가 정 반대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다만 이미 만들어버렸을지도, 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시선을 옮겨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디미트리는 가만히 기다렸다. 네가 저 자신이 해석하지 못한 표정을 띄우게 만든 감정 탓에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그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는지 조금 후, 네게 들려온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네가 분명 말했지. 내게 필요해 보인다고. …그걸 증명할 수 있나? 네 같잖은 친구 놀음에 어울려 준다면."

 

반 이상의 확률로 부정의 뜻을 들을 줄 알았다. 네가 그것을 받아들일줄은 몰랐으니까. 제가 알기론 넌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디미트리는 두 눈만 가만히 꿈뻑이길 잠시, 곧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사실 답을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못할 이유 없다' 말한 순간부터 네가 긍정을 한다면 그러자고 할 작정이었으니까.

 

 

"어울려 주신다면야...? 증명... 해볼까요."

제가 증명해보인다 해도 결국 받아들이는 것은 라디에르 씨의 몫일 테지만... 같잖지 않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은 해볼게요.

아마 전보다 오지랖을 더 부릴지도 모르겠네요. 가볍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띄웠다. 약간의 호기심으로 인한 충동이었으나 뭐 어떤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보다 아주 조금, 한두마디 더 섞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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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20.12.03